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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2 - 2010.05.04

ARTISTS

 

박방영, 강만희 김선희, 박서령, 박선희, 박정연, 이군우, 이민하, 장경연, 천병민, 한인선

 

봄, 들길에서 같이 놀자

'봄, 들길에서 같이 놀자'

 

동양화의 11가지 여정 - 봄길 위에 서다.11명의 동양화가가 11가지의 봄길 위에 서 있다. 때로는 유사하게, 때로는 다르게. 이번 전시는 봄이 가진 생명력의 이미지에 더하여, 봄이 가진 변화 가능성에 주목한 작품들을 나누는 장場이다. 동양화의 오래된 이야기는 자연自然으로부터 출발하고 자연으로 회귀한다. 자연에는 산과 강, 나무와 꽃, 동물과 사람이 등장하고, 그 사이에는 교감交感이 오고간다. 그 이상향理想鄕의 끝에서 우리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대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동양화 전시는 이상화의 끝에서 만난 평온함보다는 그 여정旅程을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과정 자체를 풀어낸다. 희로애락喜怒哀樂에 능숙해지는 삶의 놀이 가운데. 그래서 오래된 이야기를 지닌 동양화가 현대라는 시간의 춤사위 속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법은 전통적이고 현대적이고 더불어 중첩적이게 된다. 11명의 작가들 모두 각자의 봄길을 걸어간다. 자연과 함께 한 동양화의 오래된 기억記憶을 품어 앉고, 그 지평 위에 새로운 변용變容을 꿈꾼다. 지금 전시의 봄 냄새가 이채로운 건 봄길을 만들어 가는 동양화의 각양각색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나와 닮은 그림 찾기 놀이.

 

나로부터의 향유와 치유 -봄길 위에 꿈꾸다.11명의 동양화가가 희로애락의 삶을 향유享有하고 치유治癒하는 작업 놀이에 동참해볼까. 작가 이름순으로 따라가다 만나보는 작품 세계는 굽이굽이 한 가득이다.강만희 작가는 인생人生이란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는가?” 라는 삶의 근원적인 물음에 도전한다. 사소한 일상의 체험과 변화무쌍한 자연의 섭리를 역易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조형적으로 풀고자하는 작가의 의도는 나뭇가지의 움직임으로 체험된다. 우리는 우주와 인생의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는가. 작가의 물음에 귀기울여보라. 김선희 작가는 고향인 제주도의 신비로움으로부터 작품의 모티브를 얻는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했다는 설문대 할망 창조설화에 대한 관심이나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수렵도를 연상시키는 원근법 파괴의 병렬식 조형 구도는 제주도의 신령스러운 기운氣運을 원시로부터 찾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와 맞물려 있다. 신비한 기운이 느껴지는가.박방영 작가의 그림은 에너지生氣의 춤추는 장場이다. 망설임 없는 붓질 하나하나가 작가의 삶의 내공을 실어 나른다. 누구나 자신 안에 에너지의 집을 짓는다면, 그 집의 크기는 어떤 모양새일까? 작가의 강렬하고 간결한 필선 위에서 에너지의 흐름에 공명共鳴해 볼 자, 우주의 빛에 탑승해 볼 자,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어 보라. 박서령 작가는 산과 산새, 나무, 사람, 그리고 묵의 농담과 여백으로 산수화의 담백함을 담아낸다. 그러나 산새의 율동성이 전통적인 산수화의 적막함을 깨우는 건 왜일까? 먹의 검은 색처럼 선명하고, 여백의 흰 공간처럼 순수한 세상. 그런 세상을 재촉하지 않는 걸음으로 소요逍遙하는 자신을 상상해보라.박선희 작가가 묵선으로 그린 곰은 그저 그런 현실과 탈주를 잊어버린 채 방치된 작가의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다. 솔직하다. 한 번 정도 육중하고 외롭고 덤덤한 곰이 되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성급하게 지금의 현실로부터 초월해 저 너머의 이상향으로 가는 것보다 지금의 나를 직시直視하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다. 박정연 작가의 노란黃金 소나무는 음양오행의 조화로 완성된 존재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추구한다. 친근한 사람처럼 어우러진 소나무는 “그림 그리는 행위가 수행자로서의 삶과 닮아 있다”는 작가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더 이상의 욕망도 사라져버리고 그 자체로 온전한 수행修行의 끝에서 소나무는 과연 어떻게 무엇이 되어 있을까?이군우 작가의 회화는 한옥의 문틀과 한지에 비친 풍경으로 짜여 진다. 작가의 순수 기억이 불러낸 한국적인 미가 동양화의 조형적인 구조까지 확장시키고 재창조의 근간으로 작동한 셈이다. 전통에 대한 추억이 지금의 미적 흥취에 부합한다면, 그건 전통이 충만한 변용變容 가능성을 내포한 채 타임머신을 탔기 때문이다. 이민하 작가는 생명의 순환循環을 찾는다. 말라가는 꽈리는 앙상하지만 씨앗을 잉태한다. 죽음과 탄생은 동시다발적이다. 봄이 오면 싹이 나고 꽃이 피지만, 이미 그 기원에는 시드는 순간의 절묘함도 함께 잠재되어 있다. 생명의 순환도, 삶의 희로애락도 이와 같지 않을까? 태어나지만 태어나지 않고, 죽지만 죽지 않는.장경연 작가의 푸른 꽃은 ‘사이間’에 거주하는 사이-존재다. 안과 밖, 꿈과 현실, 자아와 타자, 그 간극의 언저리에서 맞이하는 찰나刹那. 사랑스런 미인을 꿈꿔보았는가? 니체의 초인을 꿈꿔보았는가? 몽유도원도를 거니는 본인을 꿈꿔보았는가? 태초에 선택이 주어졌고, 그 선택의 놀이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면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넘어서나.천병민 작가의 기억記憶 지우개는 강렬한 색채의 중첩된 잎사귀들이다. 작가가 체험했던 삶의 남루한 아픔은 배설양분이 되어 잎사귀의 생동감과 보색의 강렬함으로 거듭난다. 작가가 닮고 싶어 하는, 천지만물과 자아 사이의 무경계를 꿈꾸는 자연인, 그것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중요한 것은 기억이 치유되고 사라진 뒤의 바로 ‘지금 여기’. 지금 여기를 기억하라.한연선 작가는 우리의 앎의 한계를 흩어지는 점들의 유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절대적인 인식 너머의 진리와 상대적인 우리의 불완전성. 삶은 알다가도 모를 일, 투성이다. 다 보았는가?다 알았는가? 어제의 생각과 감정이 선입견이 되어 화면 위를 채운다. 오늘의 것은 또 다르네. 삶은 나로부터 정지되고, 나로부터 움직이고, 나로부터 향유되고, 나로부터 치유된다. 봄春과 봄見은 어디로 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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